책 추천 유투브 영상이었던 것 같다. 댓글에서 힘들때 자신을 잡아준 책으로 ‘젊은 adhd의 슬픔’이었다는 댓글을 보고 꼭 읽어봐야겠다고 캡쳐해 두었었다.
http://naver.me/FaALMRAX
병원에서 근무를 하면서 나에게 어떤 질병의 진단은 육체적인 것으로만 정의 되어있었다. 그리고 진단 받은 병명으로 슬퍼할 수 있는 사람은 치료의 끝이 완치보다는 죽음으로 부터 조금 더 멀어지게 만드는게 다인 사람들이었다.
사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적은 없지만 병원에서 근무를 하면서 살고 죽는것 너머의 가치를 가지는 건 현실적으로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원에서 급박한 상황이라는 이유로 노련한 의사나 간호사가 아직 서툰 간호사나 의사들에게 폭언이나 인신공격을 해도 암묵적으로 넘어간다고 생각하고.
사람하나 살리는데 주도적인 의사가 새로들어와서 서툰 간호사가 제대로 보조하지 못해 욕을 한다고 가정해 본다면. 사람 살리는데 누구하나 욕먹는게 뭐가 큰일이냐는 거다.
그래서 책에서 adhd로 진단받고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그렇게까지 충격을 받을만한 병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내가 adhd가 아닌 사람으로 살아 왔기 떄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구나라는 마음과 신체적 질병이 아닌 정신적 질병의 힘듦을 무의식적으로 별거아닌것으로 치부하고 하고 있던 것을 반성했다.
책을 읽으면서 기억에 남기고 싶었던 부분과 동감하는 부분도 있었다.
1. 욕 권하는 사회에서 약한 개체가 살아남은 방식은 기형적일 수밖에 없다.
: 매일 이야기 하는게 병원이라 읽기 싫을수도 있지만… 병원 다니면서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안되게 우울해 있었던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살아남는 방식이 틀렸기 때문인거 같다. 나는 자책하고 실수를 곱씹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존감이 떨어졌고 저 쌤만큼 모르니깐. 나는 의사만큼 모르니깐. 그런 취급을 받는걸 당연시 했던거 같다. 나중에는 나에게 좋게 대해주는 선생님들이 어색했다. 결국 잘 못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인걸 들킬까봐 오히려 나를 못 믿고 혼내는 사람이 더 편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안 상하는건 아니었다. 인격적으로 너무 기분 나쁘지만 당시에는 당황스럽고 내가 감히 화를 낼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자책하는 동안 뒤로 밀러난 분노는 나중에 두배로 더 커져서 일하는 내내, 퇴근하고서, 시간이 지나고도 문뜩문뜩 떠올라 나를 괴롭혔다.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니라 머리속으로 그 사람의 따귀를 때리는 상상을 하면서도 실수를 자책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2. 그런 나를 어떻게 지킬 것인지 궁리하다 악역도 선역도 내가 먼저 하자는 결론에 다다랐다.
: 나의 실수는 악역만 자처하고 선역을 할 생각은 한 번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왜 나는 나에게 선역이 되지 못했는지 후회했다.
3. 자학을 컨트롤 하자면, 우선 그러한 행동의 무게감을 깨달아야 했다.
: 자책으로 자학을 하면서 점점 우울해지고 자존감이 낮아지는걸 알면서도 자학의 무게감을 인지하지 못했다. 마음이 힘들어지면 당연하 것들이 당연하게 생각되지 않는다.
4. 자학이란 오른손에 쥔 칼로 왼팔을 회 뜨는것과 같으니 매번 반복되는 사소한 실수에 퍼부어선 안되었다.
: 매번 반복되는 사소한 실수에 퍼부어선 안되었다!!!!! 자학은 너무너무 파괴적이다. 책에서 처럼 나도 실수투성이기 때문에 매번 자학을 하다간 나는 피투성이가 되어서 회생불가능해질 거다. 큰 실수가 아니라면 그냥 넘어가버려야 했었는데 그때는 그러지 못했다. 인계장 정리를 못한것도, 3일 째에 라인을 바꾸지 못한것도, 카트 물품을 인계시간 때까지 정리하지 못한것도 너무나 큰일이라 자책을 안할수가 없었다. 왜그랬지, 왜그렇게 노티했지, 왜 못 봤지, 왜, 왜. 왜. 왜.
5. 인생이란 결국 일인극이니 구원자의 역할 또한 나의 몫이었다.
6. 본인이 뿌린 슬픔은 본인이 회수하는게 깔끔하고 옳았다.
: 병원을 다니면서 힘들었던 마음을 친구에게 위로 받고 싶었던 적이 있다. 그떄 그 아이들에게 많은 실망을 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랬는데 힘든이야기를 하는데 나오는 음식에만 정신이 팔려 먹기 바쁜 너희들을 보면서 마음을 닫았던거 같다. 이제는 친구들에게 뭔가 바라지 않는다. 그 아이들이 단순히 재미만을 위해 나를 찾는것처럼 나도 그 아이들을 재미만을 위해 찾기로 했으니깐. 이 책에서 나오는 두 친구들 처럼 나에게 그런 친구는 왜 없을까 생각했지만 더욱 우울할 뿐이다. 됐다! 그런 친구를 필요없다. 결국 급하면 자기 밥그릇만 챙기게 되는데 친구에게 뭘 바라지 않는걸로 합의했다. 나는 내가 챙겨야 한다. 나만 내가 원하는 만큼 위로해줄 수 있으니깐. 그래서 내가 찾은 방법은 글 쓰느는것. 이곳에는 어쩄거나 1차적으로 거른 생각과 감정만 적는다. 적나라고 지저분한 감정은 다른 곳에 비공개로 적는다. 정말 나만 볼 수 있으니깐 쓰는 말들이 많다. 나중에 죽었을 때 발견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될만큼이다ㅎ
7. 나를 욕했던 이유를 칭찬의 근거로 탈바꿈 시키는 것이었다.
: 좋은 말이지만 어렵다. 욕했던 이유가 칭찬의 근거가 되고싶다. 나도 나의 실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싶다.
8. 모든 결론은 탐구에서 부터, 모든 갱생은 후회로 부터 기인하니 말이다.
: 후회쟁이인 나에게 후회가 갱생의 시작이라는 말은 참 희망적인 말이다. 실제로 자책하면서 바뀐 것들도 있으니깐 명심하자! 모든 갱생은 후회로부터!
9. 어떤 인생이든 싹뚝 썰린 단면에서는 ‘좋다’와 ‘나쁘다’의 기하학적 마블링이 나타날 것이다.
: 나는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좋다만 가지고 있는줄 알았다. 밖에서 밥먹는 살마들 카페가는 사람들 데이트 하는 사람들을 보면 표정이 어둡지도 않고 예쁘고 멋진 옷에 자신을 한껏 꾸몄으니깐.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기하학적인 마블링이 나타난다는 말이 위로가 됐다. 원래 힘든 사람에게 힘내보다 더 그 사람보다 더 힘들었던 경우를 말해주는게 더욱 위로가 되는 법이니깐. 나는 정말로 바란다. 나만 힘들고 우울한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만큼 고민이 많고 자책하고 자존감이 낮았으면 한다. 안그러면 너무 억울하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은 갑자기 저주의 말을 보게 되어버려서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ㅎㅎ…
10. 나는 문제에 집중하지 않으므로써 문제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수법을 자주쓴다.
: 내가 전혀하지 못하는 건데. 문제에 집중하지 못하는거. 만약 그 문제가 물건이라면 나느 닳고 닳을 때 까지 사용하는 사람이다. 왜냐 자책은 절대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매번 자책할 일이 생겨나는 미스테리. 언제쯤 나는 완벽해질까? 잊어버리자. 부정적인 것들은 더욱 잊지 못하는 나에게 집중력이 없어 쉽게 잊어버리는 adhd의 특징은 책을 읽으면서 조금 부럽기까지 했다.
병원에서 힘들어하는 나때문에 나만큼 힘들어 했던 엄마가 생각났다. 내가 종합병원으로 옮긴 후 대학병원이 아쉽기는 하지만 개운하다는 엄마의 말에 나도 마찬가지였다. 객관적으로 더 밑으로 내려왔지만 어쩄거나 나는 지금이 더 행복하다. 그리고 어느날 아빠가 ‘엄마가 얼마나 힘들어 했는지 너는 모르지’라고 한 말을 듣고서 힘들었던 것 곧이 곧대로 엄마에게 티를 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엄마에게 말하면서 나는 확실히 위로 받았다. 나혼자 감당하기 벅찰정도로 나는 그 당시 우울하고 부정적이고 희망적인 생각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감정을 누구에게라도 옮기고 싶었다. 사실 알면서도 엄마에게 말한거 같기도 하다. 그 때의 지저분한 기분은 엄마에게 분명히 옮겨갔을거다. 나는 가끔 엄마가 보여주는 사랑이 가늠이 안된다. 저 말처럼 내가 아무리 밖에서 천해져도 엄마한테 만큼은 영원한 특권층이자 일등시민이다.
이 글을 읽고 내가 생각하는 나의 문제점이 나와 무척 공감했다. 나는 노력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노력한 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게 무척이나 두렵다. 차라리 노력하지 않고 나쁜 결과를 얻고, 노력하지 않고 운 좋게 좋은 결과나 평타를 치는게 더 좋았다. 그렇게 모든 부분들을 이런식으로 대하다 보니 원하는 게 없어졌다.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되고 싶은지도 모른다. 나는 선호도가 없다. 좋아하는 음료수도 없다. 다만 싫은것만 있다. 그래서 그 문제를 인식한 후부터 진심으로 하려고 노력하지만 무섭다. 내가 노력해도 못하는 인간일까봐. 안그래도 낮은 자존감에 박차를 가하고 싶지는 않은데.
이건 이번에 종합병원으로 옮기면서 어느순간 마음이 편해졌던 날이 떠올랐다. 대학병원에서의 나를 포기 하지 못하니깐 종합병원에 있는 내가 너무 초라하고 부끄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만족한다. 사실 월급이 크게 차이 안났던게 큰 이유가 된것도 있지만. 여기서도 나는 잘 모르는것 투성이라 여기서 모든것을 마스터 해버리자는 생각이 큰 위안이 되었다. 마치 정체를 숨기고 동내 무술학원에서 일하는 무술고수처럼. 우연히 방문한 병원에서 어나더레벨의 간호를 받게 된다면 얼마나 행운일까. 내가 그런 행운이 될 수 있는 간호사가 되고 싶다.
나만하는 상상일수도 있는데 나는 어렸을적부터 하는 상상이있다. 1. 어느날 지니가 나타나 나에게 3가지 소원을 말해보라고 하면 뭐라고 대답할지. 2. 어느날 갑자기 무작위로 미지의 세계에 갈 수 있게 된다면 지금 살고 있는 곳을 포기하고 어디로 갈지 모르는 그곳으로 가는것을 선택할건지.
정말 말도 안되는 상상이지만 나는 아직까지 자주한다. 사실 1번은 원래는 머리 숱 적어지게 하기, 피부 좋아지게 하기, 다리 길어지기 (시력 좋아지게 하기, 마른체형되기도 후보에 있다)가 있었는데 머리숱이 많은건 좋은거고 피부는 점점 좋아졌고 다리길어지는건 탐나기는 하는데 옷으로 커버할 수도 있고 (시력은 수술 또는 렌즈로 해결, 마른 체형은 노력으로 살 빼면 되니깐) 등으로 해결이 다 가능하게 되면서 잘 안하는 상상이다.
2번은 몇년동안 안하다가 요근래 문뜩 다시 하게 되었다. 어렸을 적에는 무조건 간다였다. 그때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간다였다. 판타지를 좋아하는 나에게 미지의 세상은 초능력자도 될 수 있고 멋진남자를 반하게 만드는 초절정미녀일 수도 있고, 제일가는 마법사일 수도 있었으니깐. 하지만 좀 크면서는 안간다였다. 왜냐면 그런 불확실함에 지금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위험했다. 사막으로 갈 수도 있고 지옥으로도 갈 수 있으니깐. 차라리 재미도 없고 주인공은 아니지만 안정적이고 예상가능한 지금처럼 사는게 나아보였다. 그리고 가족들이 걱정할거니깐. 하지만 요 근래 다시 고민했을 떄는 간다였다. 이유는 음. 우선 아빠와 싸우면서 가족들이 안간다의 이유였던게 무효가 되었고 죽이되든 밥이되든 특별한 뭔가를 해보고 싶었다. 새로운 내가 될 수 있을거 같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 저 문장을 보면서 공감이 갔다. 어쨌거나 다른 세상에 내가 가도 나는 나라는 가정을 예외로 두지 않았다. 나는 나 그대로면서 초능력자고 미녀였다.
그리고 사실 혼자 상상하는것 중에 너 연예인으로 태어나면 누구로 태어날래 중에 한 60%의 확률로 나는 나를 골랐다. 사실 내가 나와 연예인 누구와 비교하면서 고민하는것 자체에서 이미 나의 승리라고 본다. 나는 생각보다 나를 좋아하는것 같다. 긴 속눈썹도 나름 예쁘다고 생각하는 얼굴도. 속마음은 둘째치고 친절한 성격과 말투도.
책의 뒷부분은 대체적으로 앞장만큼이나 공감가지는 않았다. 앞부분과는 다른게 개인적인 부분이 많아서 그런거 같다. 하지만 내가 아는 세계가 조금더 넒어진거에 만족한다. 책을 읽고 이렇게 정리하면서 나에대해 또 알게 되어서 내가 책을 읽고 이렇게 기록하는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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